히브리서 7장(7:20-28) 설교 - 매일성경 7월 11일
매일성경 7월 11일(월) 히브리서 7:20-28 설교 - 대제사장 예수 그리스도
오늘은 우리의 대제사장이 되시는 예수님에 대해 말씀을 나눠보고자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대제사장이십니다. 그런데, 대제사장이라는 것을 주장하는 이유와 그리고 근거에 대해서 우리가 먼저 알아야 합니다.
첫 번째, 히브리서는 왜 예수님이 우리의 대제사장이 되신다고 주장할까요?
27절에 있습니다. 인간 대제사장은 먼저 자기 죄를 위하고, 다음에 백성의 죄를 위하여 날마다 제사를 드려야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러실 필요가 없으시다는 것이죠. 단번에 자기 자신을 제물로써 드려서 더 이상 제사가 필요 없게 만드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대제사장이라고 주장하는 거예요. 왜요? 제사는 아무나 드릴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왕도 하면 안 돼요. 사울왕이 사무엘 선지자 없이 제사를 드렸다가 그의 왕조가 끊어지게 되지 않았습니까. 제사는 제사장이 드려야 하는 거예요. 그래서 예수님이 단번에 제사를 드릴려면 먼저 대제사장이 되셔야 하는 거예요. 그래서 히브리서는 예수님이 대제사장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두번째, 자, 그러면 대제사장의 근거가 어디있냐 하는거죠.
왜 이런 말을 할까요? 히브리서를 읽는 독자들이 만만치가 않습니다. 히브리서를 처음 받아 보게 된 사람들은요. 정통 히브리파, 이스라엘에 거하던 보수적인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율법과 구약에 정통한 사람들이었어요. 온 세계에 흩어져서 히브리어보다 헬라어가 더 편하게, 모국어로 사용하던 디아스포라 유대인하고는 굉장히 달랐어요. 그래서 그들에게 예수님이 구원자이시고, 구원자기 되신 이유는 자기 자신을 제물로써 드렸기 때문이고, 제물로써 드릴 수 있었던 이유는 제사장이었다고 말해야 하는데, 그러면 예수님은 유다지파인데 어떻게 대제사장이라고 말할 수 있느냐? 율법을 무시하냐? 이런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하는 것이죠. 그래서 그것을 설명하기 위해서 히브리서 6-7장을 할애해서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6장에 보면 멜기세덱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멜기세덱은 아브라함에게 십일조를 받았어요. 그리고 아브라함을 축복해주었습니다. 아브라함이 축복받을 때는 아직 야곱의 열 두 아들이 태어나기 전이었습니다. 이삭도 없었던 때에요. 그러니, 율법을 통해 제정된 아론의 계열 제사장들보다 먼저 된 제사장이 있었던 거예요. 그게 바로 멜기세덱이었습니다. 그리고 이후 열두 지파가 세워지며, 하나님께서 형제들 중 한명, 레위지파를 성별하여 제사장지파로 세우셨습니다. 이러한 시간적인 순서에서 히브리서는 멜기세덱의 반차(6:20)를 따라 영원히 대제사장이 되신 예수님이, 혈통과 세습으로 제사장된 레위지파보다 훨씬 더 나은 제사장이시라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예수님은 대제사장으로서의 직무를 감당하실 수 있게 되셨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대제사증으로서 하신 일이 무엇인가? 하나님의 언약과 맹세를 보증하는 분이 되셨다는 것입니다. 7장 22절을 볼까요? “이와 같이 예수는 더 좋은 언약의 보증이 되셨느니라”고 나와 있습니다. 히브리서에서 언약이라는 단어가 첫 번째로 등장하는 구절입니다. 이 더 좋은 언약이란 무엇이냐면 8장 6절에 보면 힌트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는 더 아름다운 직분을 얻으셨으니 그는 더 좋은 약속으로 세우신 더 좋은 언약의 중보자시라”고 예수님에 대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옛 언약과 새 언약에 대해 설명합니다. 8절에 보면 “볼지어다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과 더불어 새 언약을 맺으리라”고 나와 있습니다. 이 새 언약에 대한 내용은 예레미야 31:33-34에 나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미 새 언약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새 언약이 언제 이루어졌는가? 바로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자기 자신을 제물로 드림으로써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하시고 대제사장으로서 중보의 역할을 감당하실 때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제 피의 제사를 통해서 죄씻음과 용서를 받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용서 받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구원 받는 사람이 된 것입니다.
오늘은 대제사장이시며 우리의 중보자 되시는 예수님에 대해 생각해보았습니다. 우리를 구원하기 위한 하나님의 노력과, 언약과, 맹세. 여러분 느껴지십니까? 이정도로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우리가 뭐라고, 이렇게 인간의 옷을 입고 이 땅에 내려오셔서 스스로 자기 자신에게 인류를 구원하겠다고 맹세하시며, 죽기까지 하심으로서 구원하셨을까요? 하나님께 우리는 그만큼 소중한 존재라는 것이죠. 우리는 일반 피조물하고 다릅니다. 하나님께서 생령을 불어 넣으셨고, 또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모양을 따라 지으셨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볼 때 자기 자신의 모습을 보시는 것과 같죠. 얼마나 사랑스럽겠습니까. 우리 자녀들을 보세요. 그 얼굴을 보면 내 모습이 녹아있지 않습니까? 성격도, 생긴 것도, 고집도, 머리도. 나를 닮았어요.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습니까? 나에게서 나왔는데 어떻게 안 사랑할까요. 그런 것이죠. 하나님이 그런 눈으로 우리를 보고 계신 것입니다. 그래서 죽기까지 사랑하시는 거예요. 이 믿음으로 한 주간도 승리하시기를 축복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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