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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8:23-34 설교, 떠나시기를 간구하더라(마 8:23-34)

일하는 목회자 발행일 : 2023-02-05

2월 6일 새벽기도 설교입니다.

 

설교제목 :떠나시기를 간구하더라

말씀본문: 마태복음 8장 23~34절

 

오늘 본문 말씀에는 2가지 이야기가 연결되어 있습니다.

첫 번째는 예수님께서 풍랑을 잠잠케 하신 사건.

두 번째는 귀신을 쫓은 사건입니다.

 

오늘은 귀신을 쫓은 사건을 집중적으로 보기를 원합니다.

 

28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가다라 지방에 들어가셨습니다. 이 지역은 갈릴리 호수의 가장 남쪽에 있는 지역입니다. 정확히는 최남단의 동쪽 지방입니다. 갈릴리 호수가 요단강으로 흘러가서 사해를 만들지 않습니까? 남쪽에서 좌우편으로 갈라지는데, 그 중에서 동쪽 지방입니다. 이곳은 사람들이 드문 드문 살던 곳입니다. 도시가 있는 지역이 아니고, 이방인들이 사는 지역입니다. 그래서 돼지가 등장합니다. 유대인들은 돼지를 먹지 않습니다. 더러운 짐승으로 여깁니다. 돼지를 키울 수 있다는 건 그 땅에 유대인이 없다는 것, 유대인의 영향력이 작다는 것이죠. 예수님께서 그 땅에 가셨습니다. 그곳에 귀신 들린 두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들이 예수님을 보고는 완전히 미쳐버렸습니다. 그 속에 있는 귀신이 말합니다. 29절에 보면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왜 우리를 괴롭히십니까.”라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30절에 돼지 떼가 있는 것을 보면서 31절에 만일 우리를 쫓아내시려면 돼지 떼에 들여보내달라고 말합니다. 예수님께서는 허락하시고, 결국 귀신이 돼지 떼에 들어가서 돼지들이 절벽에서 바다로 뛰어내려 몰살당하고 맙니다.

 

그러자 33절에, 돼지를 치던 자들이 시내에 들어가서 사람들에게 알립니다. 그러자 34절에 마을 사람들이 예수님에게 우리 마을을 떠나달라고 요청합니다. 결국 예수님께서는 그 땅을 떠나셨습니다. 그리고, 성경에 보면 다시는 그 땅을 밟지 않으셨다는 것을 우리는 볼 수 있습니다.

 

(전환) 예수님께서는 왜 귀신들이 돼지떼에 들어가는 것을 허락하셨을까요? 그냥 쫓아보내셨으면 안 됐을까요? 우리는 이 이야기를 보면서 종말론적인 관점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이 땅은 하나님의 허락이 없이는 단 하나도 일어날 수 없지만 마지막 날, 예수 그리스도의 심판이 도래하기까지는 하나님께서 사탄이 활동하는 것을 허용하셨다는 것을 말합니다. 허락과 허용은 다릅니다. 허락은 적극적인 의지가 들어간 것입니다. 허용은 탐탁치 않으나 봐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죄를 허용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마지막 날이 아직 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재림하시고 심판하시면 그때 비로소 죄와 사탄은 활동을 멈출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신앙의 지혜를 줍니다. 우리 삶 가운데 왜 여전히 죄의 문제가 존재하는지에 대한 답을 줍니다.

 

(전환) 아무튼, 이제 마지막 구절을 유심히 보기를 원합니다.

 

가다라 지방 사람들은 이제 선택의 기로에 놓였습니다. 돼지 떼가 몰살당하여 재산에 큰 피해를 입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을 괴롭히던 귀신들은 더 이상 그 땅에 머물지 못하고 사라졌습니다. 감사의 마음으로 예수님을 영접할지, 아니면 재산상 손해를 보게 하신 예수님을 원망하며 떠나게 하실지. 기로에 놓였습니다. 우리가 말씀에서 읽은 대로 가다라 지방의 사람들은 속상한 마음을 해소하지 못하고 예수님에게 떠나주실 것을 요청합니다.

 

(적용) 이것을 보면서 여러 마음이 들었습니다. 죄에서 자유를 얻을 때는 손해 보는게 생기는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생각해보면, 막 스무살이 되었을 때 학교 친구들이 불러서 주점 같은데를 가서 술 먹자고 하고 그랬었습니다. 너무 친한 친구들이라 저도 그 자리에 끼어서 막 놀았어요. 물론 술은 먹지 않고 안주하고 사이다만 먹었습니다. 그런데, 술을 안 마시고 저 혼자 제정신으로 깨어 있다 보니 너무 어색하더라구요. 술 자리가 싫고 꺼려지기 시작했습니다. 친구들도 느낀 걸까요?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부르는 횟수가 줄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고등학교 때 그렇게 친했던 친구들과도 멀어지게 되었습니다. 서로 누리는 문화가 달라진 것이죠.

 

말씀을 삶에 적용해보며.. 세상과 주님, 두 군데에 발을 들여놓을 수는 없구나. 그런 생각을 합니다.

 

오늘 말씀을 묵상해보시면서 나는 어디에 발을 두고 있는지? 혹시 양발을 걸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며 물질보다 영적인 축복을 소망하고 간구하는 우리가 되기를 원합니다. 가다라 지방 사람들과 같이 예수님에게 떠나달라고 간구하는 어리석은 사람이 아니라, 감사 찬송을 올리는 내가 되기를 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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