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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목사 현실 "내일 당장 짐 싸서 나가세요."

일하는 목회자 발행일 : 2024-12-04

부목사 현실

 

담임목사님께서 부목사님 한분에게 내일 사무실에 있는 짐을 정리해서 집으로 가져가라는 말씀을 하셨다. 그 부목사님은 원래는 돌아오는 주일에 사임 인사를 하고 사역을 그만두기로 하신 분이었다. 금요일에 설교 순서도 아직 남아있고, 주일에는 교육부서 설교도 남아있기 때문에 아직 정리를 다 하지 않은 상태였다.

 

담임목사님과 부목사님은 좋은 사이는 아니었다. 담임목사님은 청빙 받아서 새로 오신 담임목사님이신데, 우리교회에 담임이 되어 위임 받으신지 1년 정도 되었다. 그러다보니 성도들에게 자기 의견을 내실 수가 없다. 특히나 장로님들 말씀이라면 무조건 '알겠습니다.' 할 수밖에 없는 처지라고 본인 입으로 말씀하셨다.

 

부목사님은 우리교회에 오신지 7년 정도 되신 분이시다. 우리교회 부목사님들 중 가장 오래 계신 분이다. 부목사님은 담임목사님이 우리교회에 오시기 전, 원로목사님이 뽑은 목사님이시다. 그러다보니 서로 마음이 안 맞을 때가 종종 있다. 그러면 서로 간에 잘 조율을 해야 하는데 두 분 모두 자기 주장을 강하게 펴시는 스타일이시다. 자꾸 마찰이 생기고 부딪히다보니 담임목사님은 부목사님을 인격적으로 대하지 않고 도구로 대하며, 부목사님은 담임목사님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결정하고 통보한다. 그러다보니 사이가 틀어지고 관계가 삐걱거린다. 그게 쌓이고 쌓여서 아직 사임하기도 전인 부목사님 짐을 다 정리해서 집으로 가져가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부목사님이 유학원과 어학원 수업 때문에 당장 와서 짐 싸기가 어렵다고 하니 동료 부목사님들 보고 짐을 싸서 창고에 넣어놓으라고 한다. 얼마나 비인간적인가? 우리는 대답하지 않았다. 침묵으로 거절했다.

 

부목사님의 사임 이유는 유학이었다. 사임 후 유학을 준비하느냐고 교회에 남게 해달라고 담임목사님께 요청했다. 자녀들이 교육부서에 있는데 성탄절 행사 연습도 열심히 하고 있고, 마땅히 갈 교회가 없기에 출석을 하게 해달라고 부탁하셨다. 첫 사역지에, 7년이나 함께한 교회이기 때문에 정이 많았을테니 이해가 된다. 그러나 담임목사님께서는 단칼에 자르셨고 교회에 오지 말라고 말씀하셨다.

 

유학이라는 사유로 내 의지로 나가는 것이지만, 마지막이 이렇게 끝나버린다면 얼마나 씁쓸하고 마음이 아플까? 선배들에게 듣던 가혹한 대우를 눈앞에서 목격하니 목회에 정이 떨어진다. 여기가 직장도 아니고 교회인데, 서로 갈등이 있었을지라도 적어도 마지막은 아름답게 장식하고 서로 간에 있었던 부정적 감정을 털어버려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러나 어떻게 하면 이 사람을 더 비참하게 만들어줄까 고민하며 합법적인(?) 권력으로 찍어누르는 모습을 보며 진절머리가 났다. 내가 만약 그 입장이었다면 나는 참지 못하고 소리를 질렀을 것이다.

 

참, 나도 담임목사님에게 험한 소리를 들은 적이 있다. 내 앞에서 "너를 괜히 뽑았다."라고 말한 것이다. 근로기준법에 해당하는 노동자였다면 곧바로 노동부 신고감이다. 목사 세계는 바운더리가 좁기 때문에 어차피 신고도 못하지만 말이다.

 

나를 괜히 뽑았다는 소리를 들은 건 우리교회에 온지 세 달 정도 되었을 때다. 눈 앞에서 그런 소리를 들으니 참 황당했다. 그런 소리를 듣게 된 원인은 내가 담임목사님의 목회를 반대했기 때문이다. 사실 반대도 아니고 어려울 것 같다는 의견을 낸 것이었지만 까라면 까라는 군대식 대답이 아니여서 불편하셨는지 사람이 눈 앞에 있는데 괜히 뽑았다라는 소리를 하신 것이다.

 

갈등의 원인은 이것이다. 목사님께서 청년부 예배 성경봉독을 사회자가 직접 하는 게 아니라 드라마 바이블로 들려주면 좋겠다고 의견을 주셨는데 내가 어려울 것 같다고 말씀드렸다. 왜냐하면, 청년부 예배 방송실을 섬기는 청년이 1명이기 때문에 성경 봉독 음원을 재생함과 동시에 성경구절을 PPT로 띄워서 넘기면서, 사회자 카메라와 PPT 카메라를 동시에 전환할 인력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최소한 2명은 되어야 예배가 매끄럽게 흘러갈 수 있었다.

 

청년부 예배가 청년부실에서 본당으로 옮긴지 얼마 안된터라 예배 진행이 매끄럽지 않고 삐걱대는 상황이었다. 아마추어 느낌이 팍팍 나는 상황이었기에 예배 순서를 화려하게 꾸미기보다 심플하게 안정화시킬 필요가 있었다. 그러한 상황에서 담임목사님은 예배를 더 복잡하게 만들려고 하시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건 어려울 것 같다는 의견을 낸 것 뿐이었는데, 목사님은 "제가 하고 싶다고요!"라고 3번 소리친 후에 작은 목소리로 "이래서 내가 청년부 전문 사역자를 뽑으려고 했는데.."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그런 소리를 듣고도 남아있을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당장 나가고 싶어서 대형교회 두 곳에 서류를 넣고 면접을 보았다. 면접까지 갔지만 불합격. 예전 같으면 가까운 아무 교회나 지원했을테지만 신중하게 지원했다. 그렇지만 이번 사역지의 짧은 사역기간으로 인해 압박 면접을 받았고 지혜롭게 대답하지 못하여 낙방하고 말았다.

 

결국 나는 지금의 현실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이 과정을 통해서도 하나님께서 나에게 가르치고자 하시는 것이 있을거라고 믿으며, 담임목사님의 좋은 점만 취하고 부정적인 면은 절대 닮지 않겠다고 결심하며 이곳에 강제로 남게 되었다.

 

일하는 목회자라는 도전, 그리고 좌절. 풀타임 목회자로의 복귀, 그리고 절망. 1년 사이에 내가 겪은 이야기다. 번아웃된 상태에서 충분한 쉼 없이 이런 일들을 연속해서 겪어서 그럴까? 요즘따라 마음이 힘들다. 다 내려놓고 지방에 내려가서 편하게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목회가 직업이 되지 않기를. 소명으로 목회의 자리에 서고 싶다. 돈에 얽매여서 부목사를 선택한다면, 바른 목회를 할 수 있을까? 부디 주님께서 나의 앞길을 부르신 소명대로 이끌어 주시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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