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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리교란? (한국교회 감리교의 시작)

일하는 목회자 발행일 : 2022-05-15

한국감리교회의 초대 선교는 1885년 4월 5일, 윌리엄 스크랜턴, 매리 스크랜턴, 헨리 아펜젤러 선교사님들께서 오신 것이 최초의 시작입니다.

 

미국의 각 선교단체들은 한미 수교조약 비준 사절단이 미국을 방문할 때까지 한국 선교사업에 적극책을 쓰지 않고 있었다. 슈펠트 조약이 완결된 직후에 미국은 그 대표 사절로서 루시우스 푸트 (Lucius H.Foote)를 한국에 파송하여 서울에 주재시켰다. 고종황제는 미국 사신의 신임장을 받은 후에 중전의 친척인민영익을 수반으로하는 답례 사절단을 미국에 가는도중에 기차 안에서 발티모어에 있는 가우쳐 대학 총장이며 목사인 존 가우쳐 (John F. Goucher)박사와 동행하게 되었다. 미대륙 횡단여행 중에 가우쳐 박사와 민영익은 서로 사귀게 되었고 가우쳐 박사는 처음으로 한국의 실정을 자세히 알게 되었다.

 

가우쳐 박사는 한국이 선교 개척지가 될 수 있는 것을 알고 1883116일에 감리교 선교사로 하여금 한국에서 선교의 가능성을 타진하도록 부탁하고 그 일을 위하여 2,000달러의 기부금까지 선교본부에 보냈다.

 

그러나 선교본부로부터 아무회답을 받지 못하자 그 이듬해 1월에 일본주재감리교 선교부의 대표자인 로보트 맥클래이(Robert S.Maclay) 박사에게 편지를보내어 맥클래이 박사가 직접 한국을 답사한 후에 선교사업을 착수했으면 좋겠다는 제의를 하였다. 그리하여 맥클래이는 1884624일에 서울에 도착하였다. 맥클래이는 오래전부터 일본에서 가까이 지내던 김옥균을 통하여 고종황제께 한국에서 교육사업과 병원사업의 개설을 허락해 달라는 청원서를 보냈다.

 

드디어 한국선교의 새로운 역사의 장은 열렸다. 188473일 고종황제로부터교육과 의료사업을 허락하는 윤허가 내렸다. 그러므로 이것이 한국기독교 (개신교) 의 공식적인 시작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이듬해인 188545에 의사인 윌리엄 스크랜턴(William B.Scranton)박사와 그의 어머니 매리 스크랜턴(Mary.F.Scranton) 헨리 아펜젤러 (Henry G. Appenzeller) 목사가 한국감리교회의 초대선교사로 부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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