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추석 설교문 10개 모음 :: 감사로 드리는 기쁨의 잔치!

일하는 목회자 발행일 : 2023-09-12

추석 설교문 10개 모음 썸네일

 

추석 설교문-1 "감사로 드리는 기쁨의 잔치!"

제목: 감사로 드리는 기쁨의 잔치

말씀: 신명기 16장 13절-15절

찬송: 310장

 

성경에 보면 이스라엘에서도 추석에 해당하는 절기가 있는데 그것이 바로 초막절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대단합니다. 한 해 동안 지켜주신 하나님께 감사하기 위해 매년 하루도 아니고 이틀도 아니고 무려 7박8일에 걸쳐서 감사 절기를 지켰습니다. 좋은 집에서 편하게 지내며 감사한 게 아니라 이런 들판에서 텐트를 치고 그 속에서 지내며 감사했습니다.

 

초막절은 두 가지의 감사를 담고 있습니다. 첫 번째는 선조들이 출애굽하여 광야에서 초막생활하던 것을 기념하며 믿음의 땅으로 인도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이 초막 생활하듯이 나그네로 이 땅에 왔다가 영원한 집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며 살아갈 것을 생각하며 감사하는 것입니다. 또 한 가지는 일년 동안 거둔 곡식을 초막에 저장하며 한 해 동안 추수하게 하시고 지켜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감사는 말로만 하고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하늘을 향해 “하나님 감사합니다”하고 크게 외친 후 끝나는 것은 진정한 감사가 아닙니다. 성경은 그렇다면 어떻게 그 감사를 표현하고 있을까요?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구체적인 감사의 실천을 찾을 수 있습니다.

 

첫번째, 절기를 하나님 앞에서 지키는 것입니다.

쉽게 표현하자면 하나님 앞에 나아오라는 것입니다. 얼굴을 보여드리는 것입니다. 고향에 계신 우리 부모님이 가장 원하는 것은 통장에 돈이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자녀의 얼굴, 손자들 얼굴 바로 우리 얼굴을 보여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우리 얼굴 보시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는 저마다 유일한 독특한 하나님의 작품입니다. 남과 비교하여 덜 감사할 것도 없고 더 감사할 것도 없습니다. 우리 모습 그대로에 만족하며 내 모습 그대로 하나님 기뻐 받아주실 것을 확신하며 하나님 앞에 나아가야 합니다. 그래서 이렇게 우리도 온 가족이 모여 성묘하며 하나님께 먼저 예배하지 않습니까?

 

두 번째 감사의 실천은 잔치를 하는 것입니다.

14절 끝부분에 보면 ‘연락하되’라는 말이 나옵니다. 연락을 하라는 뜻이 아니라 잔치를 베풀라는 것입니다. 이 잔치는 모든 이웃이 함께하여 잔치를 벌이는 것입니다. 구약의 다른 제사는 다 하나님께 온전히 태우는 제사이거나 제사한 후 얼마간은 제사장의 몫으로 돌리는 제사인데, 유독 화목제는 제사의 목적이 잔치를 벌이는 것입니다. 함께 나누어 먹는 것입니다. 이 제사가 온전히 하나님께 드려지려면 해지기 전에 그 모든 음식을 나누어 먹어야 합니다. 싸 가서도 안 되고 다음 날로 남겨서도 안 됩니다. 그래야 그 제사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제사가 됩니다. 소 잡고 양 잡고 해서 제사드렸는데 그 큰 동물 잡아서 남기지 않으려면 모든 이웃이 다 나와 함께 먹어야 합니다. 모두가 하나가 되어 받은 바 은혜를 나누어야 합니다.

 

특별히 하나님은 어려운 이웃들을 초대하여 함께 잔치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소외된 이웃은 항상 우리 곁에 있습니다. 성경은 이스라엘의 삼대 약자인 나그네와 부모 없는 아이들, 남편 잃은 여성을 반드시 이 잔치에 초대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 가족만이 아니라 이제 믿음 안에서 사랑 받은 우리가 우리 가족을 넘어 이웃과 사랑을 나누는 계기가 되어야겠습니다.

 

어느 작은 마을에 국밥집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한 아이와 할머니가 들어와서 국밥 한 그릇을 시켰습니다. 그러자 할머니는 아이에게 그 국밥을 건네고는 맞은 편에 앉아 깎두기 한 개만 오물오물 드시며 손자의 맛있게 먹는 모습을 흐믓하게 보셨습니다. 다 먹고 나서 할머니가 계산대로 오십니다. 옷 속 이곳저곳에서 꼬깃꼬깃한 돈을 꺼내는 것을 보고 주인은 안스런 마음에 돈을 안 받고 싶었는데 혹시나 마음을 상하게 하지나 않을까 고민하다가 한 가지 좋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주인은 “할머니 오늘은 돈 내지 않으셔도 됩니다. 100번째 손님에게는 공짜로 국밥을 드립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할머니와 손자는 기쁜 마음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런데 며칠 지나서 그 국밥집 건너편에 차길 지나서 한 아이가 앉아 있는 게 보였습니다. 바닥에 큰 원을 그리고 돌멩이를 던지고 있었습니다. 자세히 보니 며칠 전 할머니와 함께 온 그 아이였습니다. 손님이 한 명씩 올 때마다 큰 원에 돌을 던져 넣는 것이었습니다. 아이는 할머니에게 국밥을 드시게 하고 싶었지만 돈이 없으니까 공짜 손님으로 들어갈 걸 계산하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하나님 그날따라 손님이 많지 않아서 돌멩이가 몇 개 없었습니다. 실망한 아이의 얼굴이 멀리서 보였습니다.

 

국밥집 주인은 아무래도 안 되겠다 싶어서 전화를 걸기 시작했습니다. “어, 김사장, 우리 국밥집에 손님들 좀 많이 데리고 와, 내가 공짜로 먹여줄테니까. 될 수 있으면 많이 와야 해”, “박선생님, 오늘 우리 집에 오셔서 국밥 좀 드시죠. 제가 오늘 쏩니다. 친구 분들 좀 많이 모시고 오세요.” 조금 지나자 가게에 손님들이 몰려옵니다. 아이의 손이 빨라집니다. 돌멩이가 늘어납니다. 40, 50, 60, 99개가 되자 급히 할머니를 모셔왔습니다. 그리고 자신 있게 아이가 말합니다. “우리가 백번째 손님이지요?” 아이는 할머니 앞에 국밥을 놓고 자신은 깍두기를 오물오물거리며 할머니가 드시는 것을 행복한 눈으로 바라보았습니다. 국밥집 주인 역시 그 모습을 흐믓하게 보았습니다.

 

아이를 생각하는 할머니의 마음도 아름답고 또 할머니를 생각하는 손자의 마음도 아름답지만 가장 아름다운 마음은 국밥집 주인의 마음입니다. 두 사람만을 위한 감동의 이벤트를 준비한 주인의 마음, 그 마음이 바로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하나님은 세상의 재료가 아닌 하늘의 재료로 만든 따끈한 국밥으로 나만을 위한 잔치를 준비하셨습니다. 나를 위해 생명을 주시고 가장 아름다운 찬양을 들려주시고 말씀을 주십니다. 때론 어려움이 있으나 그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시고 어려움 너머에 은혜와 희망을 선물로 준비하고 계십니다.

 

우리 가정은 그 기쁨의 잔치에 초대되어 누리는 주님의 자녀들입니다. 그 크신 사랑 받은 우리는 이제 아직도 잔치에 참여하지 못하고 어두운 곳에서 불행하다고 생각하며 절망의 커텐 너머 환히 빛나는 주님을 외면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우리의 기쁨을 나누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슬픔의 커텐을 걷고 불신의 문을 열어젖히고 우리와 함께 기쁨의 잔치를 벌여야 하지 않겠습니까?

 

한 해 동안 우리 가족과 각 사람에게 주신 하나님의 크신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또한 앞으로 주실 은혜가 더 크고 위대하실 것이기에 미리 감사합니다. 과거뿐 아니라 미래까지 하나님의 은혜의 잔치 안에 살아가는 우리 가정이 이제 우리 가정의 울타리를 넘어서 그 사랑과 은혜를 이웃과 나눌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믿음의 부모님(돌아가신 분 - 성묘지)이 우리에게 주신 가장 값진 믿음의 유산입니다.

 

 

↓ 설교문 원고가 필요하신 분은 아래 버튼을 눌러 다운로드 해주세요 ↓ 

추석 설교문-1.hwp
0.06MB

 

 

추석 설교문-2 "온전한 감사"

제목: 온전한 감사

말씀: 하박국 3장 16절-19절

찬송: 305장

 

추석(중추절)의 의미는 한 해 동안 농사한 곡식과 과일로 하나님께 감사드리는 것입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감사라고 하는 단어는 생소한 단어가 아닙니다. 늘 입에 달고 다니는 말이요, 단어입니다. 그러나 실상은 감사가 사라진 시대에 살고 있다고 혹자는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을 통하여 온전한 감사가 무엇인지 상고하며 은혜를 나누기를 원합니다.

 

오늘 말씀에 하박국 선지자는 어떠한 모습으로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있습니까? 그 당시 상황을 보면 도저히 감사할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당시 바벨론 대 제국이 유다를 침략하는 시대입니다. 즉, 바벨론의 침략으로 유다가 멸망당하는 공포와 두려운 상황 속에도 불구하고 하박국 선지자는 하나님께 온전히 감사하고 있었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신앙인의 참 감사가 무엇인가를 역력히 보여주는 감동적인 내용입니다. 이에 비해서 우리들의 신앙체질은 너무 허약하고 미숙함을 알 수 있습니다. 우선 뜨거운 감사가 없습니다. 행여 감사할지라도 너무 감정적이고, 조건적입니다. 그러나 오늘 하박국 선지자는 고난과 두려움 가운데서도 하나님께 감사하며 찬양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온전한 감사는 무엇인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환난 가운데 드리는 감사

본문 16절 “내가 들었으므로 내 창자가 흔들렸고 그 목소리로 인하여 내 입술이 떨렸도다 무리가 우리를 치러 올라오는 환난날을 내가 기다리므로 내 뼈에 썩이는 것이 들어왔으며 내 몸은 내 처소에서 떨리는도다”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다가올 환난이 얼마나 두렵고 무서우면 창자가 흔들리고, 입술이 떨리고, 뼈가 썩으며, 내 몸의 처소가 떨린다고 고백했겠습니까? 그러나 하박국 선지자는 그런 환란을 눈 앞에 두고도 감사와 찬양을 하나님께 돌리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환란 가운데서 드리는 감사, 찬양, 이것이 온전한 감사가 아니겠습니까?

 

한 소녀의 감동적인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태어날 때부터 소아마비로 인해 걷지 못하고 언제나 휄체어에 의지하는 한 소녀가 늘 기쁘고 맑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고 질문을 했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밝게 살 수 있나요? 그러자 그 소녀가 말했습니다. “비록 제가 걷지는 못하지만, 아름다운 세상을 볼 수 있는 눈이 있음을 감사하고, 목소리로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어 감사하고, 아빠, 엄마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귀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래서 저는 걷지는 못해도 모든 것이 감사합니다”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얼마나 아름다운 고백입니까? 비록 걷지 못하는 불구의 인생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사하는 모습, 우리에게 도전을 주지 않습니까?

환난 가운데 찬양과 감사를 돌리는 가정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2) 없음에도 드리는 감사

본문 17절에 보면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찌라도”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말씀입니다. 먹을 것도, 양식도, 사업장도 모든 것이 없다는 말입니다. 인생으로 비유하자면 철저하게 부서진 인생을 의미합니다. 가정으로 표현한다면 풍비박산된 가정이라고 하면 되는 상황입니다. 정말 희망이 보이지 않는 상황 속에서 감사할 수 있겠습니까? 성공하고 풍성한 가운데는 쉽게 감사하며 신앙생활을 할 수 있지만, 아무 것도 없는 고난 가운데 감사하며 살기란 어렵습니다. 그러나 온전한 감사는 비록 가진 것이 없을 지라도, 즉 아무 것도 없는 가운데 드리는 감사입니다.

 

누가복음 17장 11절 이하에 보면 10명의 문둥병자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10명이 다 고침을 받았으나 9명은 그냥 가고 한 사람, 사마리아 사람만 돌아와서 예수께 감사했다는 내용입니다. 그중 16절을 보면 “예수의 발 아래 엎드리어 사례하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한 명의 문둥병자가 무엇을 가지고 와서 사례했겠습니까? 금은보화를 가지고 와서 사례했을까요? 아니요. 눈물과 진심으로 사례하며 감사했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바록 가진 것은 없지만, 아무 것도 없지만 진정으로 마음을 다해 드리는 감사가 온전한 감사인 것입니다.

 

3) 하나님의 구원에 감사

마지막으로 온전한 감사는 하나님의 구원에 감사하며 사는 인생입니다. 18절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라고 하박국 선지자는 고백하고 있습니다.

현실은 두려움과 무서움이지만 그래도 감사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이 나를 구원하셨다는 신앙으로 인한 것입니다.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지만 그리스도인으로서 영적인 하나님의 은혜를 바라보십시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 영원한 생명의 길로 인도하신 그 은혜를 말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때때로 하나님이 주신 구원의 은혜를 잊고 살지는 않습니까? 한 번 우리들의 삶을 돌아보길 원합니다. 우리의 눈을 들어 나의 힘, 나의 구원이신 하나님을 우러러 바라보며 온전히 감사하는 가정이 되길 소원합니다.

 

온전한 감사는 구원의 하나님께 드리는 감사입니다. 그 구원을 감사하고 감격하는 것입니다. 민족 고유의 명절인 추석(중추절)을 맞이해서 풍성함을 허락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다시 한 번 생각하고 인생에 환난이 닥쳐와도, 비록 가진 것이 아무 것도 없을 지라도 하나님의 은혜와 구원의 손길을 바라보며 온전한 감사를 할 수 있는 삶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 설교문 원고가 필요하신 분은 아래 버튼을 눌러 다운로드 해주세요 ↓ 

추석 설교문-2.hwp
0.06MB

 

 

추석 설교문-3 "감사의 유익"

제목: 감사의 유익

말씀: 마태복음 18장 15-20절

찬송: 78장, 313장

 

오늘은 즐거운 민속 명절인 추석입니다. 이렇게 모여 예배하게 되어 얼마나 감사한지요! 할아버지나 할머니 등 어른들이 아이들을 버릇없이 만든다는 통설이 있지만 어른들이 계시고 가족이 있다는 것은 우리 인생에 커다란 울타리 역할을 해줍니다. 더구나 이렇게 믿음을 갖고 둘러 앉아 예배하는 기회를 갖는 것이 얼마나 축복인지요. 우리 가족 모두에게 하나님께서 큰 은혜주시길 사모합니다.

 

아주 맑은 연못에 개구리들이 모여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개구리들은 늘 평범한 삶에 지루함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하늘을 향해 간구했습니다. “저희들에게 좋은 선물을 보내 주세요” 하늘은 연못에 커다란 통나무를 던져 주었습니다. 그때부터 개구리들은 통나무 주변에 모여들었습니다. 왜냐하면 통나무 주변에는 애벌레, 정벌레, 지렁이들이 모여 살게 되어 맛있는 먹이를 먹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개구리들은 몇 달이 지나자 시들해졌습니다. 그 동안 맛있게 먹은 벌레들에 싫증을 느낀 것입니다. 아무런 변화가 없는 통나무에 대해 불만을 품고는 그래서 다시 하늘을 향해 빌었습니다. “좀더 멋있는 선물을 주세요” 그러자 하늘은 연못에 식욕이 왕성한 큰 뱀을 던져 주었습니다. 개구리들은 멋도 모르고 물뱀을 크게 환영했습니다. 그런데 그날부터 물뱀은 개구리들을 닥치는 대로 잡아먹었습니다. 몇 달 후, 연못에는 단 한 마리의 개구리도 살아남지 못했습니다.

 

안타까운 이야기지만 우리 주변에서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현재의 삶에 곧장 실증을 느끼고 늘 새로운 것을 찾곤 합니다. 그러나 감사가 없는 삶은 금방 싫증나고 불행이 닥치게 됩니다.

 

어느 목사님은 교회에서 설교할 때나 기도하실 때마다 날씨를 주제로 늘 감사했답니다. 좋은 날은 당연히 감사하고 비오는 날이나 바람부는 날에도 여전히 감사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어느 주일에는 눈보라가 마구 달려드는 악천후 기후였습니다. 그런 날은 성도들도 어려워 많은 사람들이 결석하기도 했습니다. 예배에 참석한 성도들은 이런 날씨에도 과연 우리 목사님이 감사기도를 하는지에 대해 궁금했습니다.

 

그날 목사님은 이렇게 기도했답니다. “하나님, 이런 험한 날씨는 오늘만 주시니 감사합니다” 성도들은 모두 “아멘”하지 않을 수 없었답니다. 그렇습니다. 성도는 어느 날에도 감사해야 합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신 말씀 가운데서 감사할 이유를 몇 가지 찾아보겠습니다.

 

첫째로, 기도할 수 있음에 우리는 감사하게 됩니다.

살다 보면 어려운 때가 꼭 있습니다. 나 혼자서는 도저히 감당하기 어려운 때를 만날 때도 있습니다. 답답하고 막막하고 걱정이 태산같이 밀려옵니다. 그럴 때 보통 사람들은 어떻게 합니까? 절망하거나 크게 낙심하고 술이나 마시면서 신세타령을 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 성도들에게는 기도가 있습니다. 기도가 있음이 얼마나 힘이 되는지 경험하십니까?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 매이고,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린다”(18절)고 했습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땅이 먼저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기도로 하나님의 역사도 끌어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기도할 수 있음을 감사합시다. 많은 것을 가지지 못했어도 염려할 필요가 없는 것은 기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기도할 때 하나님이 분명히 도우십니다. 늘 감사하기 바랍니다.

 

둘째로, 함께하는 사람들 때문에 감사해야 합니다.

19절의 중요한 키워드(Key word)는 ‘합심’이라는 단어입니다. 즉,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나님이 이루게 하신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함께하는 가족을 주셨습니다. 함께하는 성도를 주셨습니다. 그리고 내 주변에 친구와 동역자도 주셨습니다. 이 모든 사람들을 인해 감사해야 합니다.

 

셋째로, 주께서 함께하심에 감사해야 합니다.

20절은 바로 ‘임마누엘’ 축복을 말씀하십니다.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사실은 주께서 함께하셨기에 그 동안 잘 지냈습니다. 때로 어려울 때는 혼자인 줄 알았지만 결국 하나님이 도우셨기에 여기까지 온 것입니다. 주변에 권력있는 사람, 넉넉한 부자, 무엇인가 힘 있는 사람, 어느 기과에서 힘깨나 쓰는 사람이 함께해 주는 것도 때론 도움이 됩니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의 도움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사람들은 영원히 나와 함께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실 때 진정 우리에게 유익이 됩니다. 이 시간 기도하게 하심에 감사합시다. 내 주변에 가족과 친구와 동역자 주셨음을 감사합시다. 임마누엘로 주님이 언제나 함께하심을 믿고 감사합시다. 좋은 명절이 될 줄 믿습니다.

 

 

↓ 설교문 원고가 필요하신 분은 아래 버튼을 눌러 다운로드 해주세요 ↓ 

 

추석 설교문-3.hwp
0.06MB

 

 

추석 설교문-4 "노아가 드렸던 가정예배"

제목: 노아가 드렸던 가정예배

성구: 창세기 8장 20- 9장 2절

찬송: 278장, 34장

 

아프리카 밀림에서 가장 강한 동물은 무엇일까요? 그 해답은 개미입니다. 개미들이 떼를 지어 이동하면 그 길이가 무려 2-3킬로미터나 됩니다. 밀림의 맹수들도 개미 떼를 발견하면 저마다 소리를 지르며 숲으로 도망한다고 맙니다. 물론 몸집이 가장 크다는 동물인 코끼리도 겁을 먹습니다. 그런가 하면 밀림의왕이라는 사자도 개미가 이동하는 반대 방향으로 쏜살같이 도망한다고 합니다. 왜 이렇게 개미를 무서워할까요? 잘못 걸리면 영락없이 놈들의 밥이 되고 말기 때문입니다. 수십만 마리의 개미가 동물의 몸에 붙어 살을 뜯어 먹으면 그것을 견딜 동물은 하나도 없기 때문입니다. 맹수들이 개미를 두려워하는 것은 개미가 힘이 세기 때문이 아니라 개미의 무서운 협동심 때문입니다. 개미는 지극히 작은 벌레 불과하지만 수십만 마리가 힘을 합쳐 코끼리를 공격하면 단 하루만에 앙상한 뼈만 남는다고 합니다.

 

협동심은 가장 강력한 무기입니다. 하나님이 가족들을 주신 것은 가족 간에 서로 협력하여 삶의 위협적인 맹수들을 물리치라는 섭리입니다. 우리는 가정을 소중히 여기고 서로 협동해야 합니다. 그래야 어려움도 이기고 고난도 극복할 수 있습니다. 오늘 추석을 맞아 가족과 함께 예배드리는 이 귀한 시간 우리 모두 협력하고 도우며 살기를 결심합시다.

 

오늘 성경의 인물은 노아입니다. 홍수 심판을 겨우 빠져 나온 노아의 가정은 제단을 쌓고 하나님께 감사예배를 드렸습니다. 정결한 짐승과 정결한 새 중에서 제물을 택해 번제로 드린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노아의 감사예배를 받으시고 그 가족들에게 복을 주셨습니다. 우리도 노아처럼 일년 동안 열심히 살다가 추석 명절을 맞아 감사하며 예배드리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노아 가정처럼 복을 주실 것입니다.

 

첫째로, 노아의 가정은 온 가족이 모여 함께 예배를 드렸습니다.

이들은 방주를 만들 때도 함께했습니다. 그리고 그 방주를 다 지은 다음 가족들 모두 함께 방주에 들어갔습니다. 방주에 나와서도 함께 예배드렸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9:1에서 “노아와 그 아들들에게 복을 주시며”라고 했습니다. 예배를 드릴 때 온 가족이 함께 드리는 것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입니다. 우리 가족들 한 사람도 빠짐없이 예배를 드리도록 기도합시다.

 

둘째로 ,노아의 가정은 하나님께 먼저 예배를 드렸습니다.

노아의 가족들이 방주에서 나와서 제일 먼저 한 것은 오직 여호와 하나님을 위해 예배를 드린 것이었습니다. 전에 하던 습관대로 정성껏 제물을 드렸습니다. 노아의 가족이 홍수 심판을 견디고 나와 자신들을 위해 할 일도 많았을 것이고, 궁금한 것도 많았을 것입니다. 예전에 살던 집은 어찌 되었을까? 예전에 알던 사람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정말 살아난 사람은 아무도 없을까? 등 관심이 많았을 텐데 이들은 오직 하나님께 먼저 예배를 드렸습니다. 이렇게 예배에 우선순위를 두는 가정에 하나님은 복을 주십니다. 마태복음 6:34에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여 주시리라”고 했습니다. 우리 가족들은 항상 예배를 먼저 드리는 가정이 되었으면 합니다.

 

셋째로, 노아의 가정은 제물을 정성껏 드렸습니다(20절).

정성을 다해 드린 예물을 하나님은 기뻐 받으십니다. 그 홍수 심판에서 자신들을 구원해 주신 하나님께 최선을 다해 제사를 드린 것입니다. 이 제물들을 하나님은 흠향하셨다고 합니다. 구약시대이므로 짐승으로 제무을 드린 것입니다만 오늘날 우리는 우리 자신을 산제사로 드려야 합니다. 즉 내 마음과 정성과 뜻을 다해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오늘도 하나님 앞에 우리 자신을 모두 드립시다. 하나님이 받으시고 복을 주실 것입니다.

 

넷째로, 감사예배를 드린 노아의 가정에 복을 주셨습니다(9:1).

노아의 가정이 예배를 잘 드렸기 때문입니다. 구약시대의 제사는 매우 엄격했습니다. 제사를 잘못 드리다 죽은 사람도 있을 정도입니다. 제사장이라도 잘못 제사를 드리면 죽음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그만큼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가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형식적으로나 외식적으로 예배를 드려서는 안 됩니다. 예배를 잘 드린 가정은 복을 받음을 믿고 우리 가정들은 언제나 예배를 정성껏드려 복을 받기 바랍니다. 이 추석날 모여 예배드리는 우리 가족 모두는 노아의 가정처럼 언제나 예배가 우선되기 바랍니다. 온 가족인 빠짐없이 예배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 정성껏 예배해야 하겠습니다. 항상 예배를 통해 은혜를 받고 축복을 받는 노아 가정처럼 살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 설교문 원고가 필요하신 분은 아래 버튼을 눌러 다운로드 해주세요 ↓ 

추석 설교문-4.hwp
0.06MB

 

 

추석 설교문-5 "감사할 수 있는 이유

제목: 감사할 수 있는 이유

말씀: 예레미야 애가 3장 22-25절

찬송: 460장

 

우리는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인데 하나님께서는 소중한 외아들을 죽이시고 대신에 우리를 살리셨습니다. 우리가 아침에 눈을 뜰 때마다 오늘 하루도 하나님이 나에게 생명을 주셨구나. 이 하루도 주님 안에서 주님처럼 성실하게 살아가야지 하는 감사와 결단의 기도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특별히 추석을 맞이하여 한 자리에 모인 사랑하는 우리 가족에게 하나님은 불평불만보다 감사의 조건을 찾기를 원하십니다.

 

먼저 부모님들은 자녀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부모들이여, 내 자녀가 잘 자라고 있는 것에 감사합시다. 누군가가 쓴 글처럼 10대 자녀가 반항을 하면 그것은 아이가 거리에서 방황하지 않고 집에 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아이들이 교회 잘 다니고 몸 건강하고 늘 즐겁게 살아가고 있습니까? 그럼 된 것입니다. 공부를 좀 더 잘 했으면 하는 것, 뭣 조금 마음에 안 드는 것 그런 것 바라보면 만족할 수 없습니다.

 

어느 라디어 프로에서 들은 것인데 수능시험 보는 날에 한 어머니가 보낸 사연이었습니다. 작년에 고등학교 2학년이었던 아이가 공부 스트레스로 인해 자살을 한 것입니다. 자신이 아이에게 공부, 공부 노래를 하지 않았더라면 이런 일이 없었을 텐데 후회를 했다고 합니다. 그 이후 동생에게는 절대 공부 압력을 주지 않았다고 합니다. 아이가 건강한 게 중요합니다. 성적이 중요합니까? 아이가 행복한 게 중요합니까? 좋은 대학 가는 게 중요합니까? 조금만 더 생각해 보면 더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는 분명합니다. 마음 속에 있는 불평 불만들의 까만 먼지를 걷어내고 나면 남는 것은 감사뿐입니다.

 

또한 사랑하는 자녀 여러분, 어늘 추석을 맞이하여 쉬는 날 집에서 게임하고 놀고 싶을 텐데 이렇게 가족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려고 애써 나와 주어서 감사합니다. 여러분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물론 친구도 좋고 재미있는 놀이, 음악도 좋지만 좀 더 생각해 보면 결국 남는 것은 가족이라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톨스토이는 <세 가지 질문>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때는 바로 지금, 이 순간이고, 가장 중요한 사람은 지금 너와 함께 있는 사람이고, 가장 중요한 일은 지금 네 곁에 있는 사람을 위해 좋은 일을 하는 것이다. 바로 이 세 가지가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들이다. 그게 우리가 이 세상에 있는 이유다.” 지혜로운 사람은 이를 잘 지키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게으른 사람, 어리석은 사람은 지금에 충실하지 못하고 현재 함께 있는 사람들보다 다른 일에 마음을 씁니다. 그리고 지금 만나는 그 사람을 위해 좋은 일을 하기보다 상처를 주고 냉담한 사람입니다. 사랑하는 자녀와 부모 여러분, 추석을 맞이하여 우리는 지금 이 순간 우리 곁에 잇는 가족에게 감사하며 그들을 위해 따뜻한 말 한 마디, 사랑의 표현을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게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민족이 망하고 하나님의 도시가 무너지는 것을 보고 예레미야는 오히려 감사의 노래를 부립니다. 절망 저편에 있는 너무도 큰 하나님의 소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그 커다란 은혜와 긍휼하심은 믿음의 눈, 감사의 왕눈으로 보면 보이는데 불평불만의 와이셔츠 단추 구멍 눈으로는 절대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올 한 해 뒤돌아보며 어려움도 있었고 기쁜 일도 있었지만 그래도 우리 모두는 각자 처한 위치와 환경에서 열심히 살아왔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아버님(어머님)의 산소에 모여 그분이 남기신 믿음과 신앙을 되돌아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지금보다 더 험난한 인생을 살아오시고 지금 하나님과 함께 하나님 나라에 계신 그분은 나라의 어려움 속에서도 가정의 궁핍함 속에서도 희망을 발견하시고 우리 자녀를 키우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보다 나은 세상이 하나님 안에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었습니다. 그래서 우리 가정이 이만큼 살게 된 것은 그 믿음 안의 소망 때문입니다. 우리도 믿음의 조상을 본받아 희망을 갖고 전진하는 가정이 되기를 바랍니다. 오늘 이 시간 아버님(어머님)의 묘 앞에서 주님이 우리 가정에 주시는 커다란 희망을 바라보고 감사하는 우리 가정이 되기를 바랍니다.

 

 

↓ 설교문 원고가 필요하신 분은 아래 버튼을 눌러 다운로드 해주세요 ↓ 

추석 설교문-5.hwp
0.06MB

 

 

추석 설교문-6 "하나님 나라를 나타내는 자"

제목: 하나님 나라를 나타내는 자

말씀: 로마서 14장 17-19절

 

‘자식은 부모의 거울이다’라는 속담을 들어보셨는지요? 아마도 자녀의 모습 중 많은 부분들이 직접, 간접적으로 부모를 보고, 듣고 따라 배운 것으로 형성이 되기 때문에 이런 속담이 생겼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는 어떠해야 할까요? 그렇습니다. 하나님께 속해 있는 선하고 좋은 것들 또는 하나님 나라의 귀하고 소중한 어떤 것들을 우리들이 드러내는 것이 당연하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2023년이 시작한 지 불과 몇 달 지나지 않은 것 같은데 벌써 추수의 계절 가을이 되었고, 오늘 민족의 대(大) 명절 추석을 맞이하였습니다. 온 식구들이 함께 둘러앉아 예배드리는 이 시간, 한 해를 돌이켜 보며 ‘지난 시간 나의 모습은 어떠하였나?’, 더 나아가 ‘하나님의 자녀로서 나는 아버지 되시는 하나님을 얼마나 나타내 보였나?’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되기를 원합니다. 혹시나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모습들이 있었다면 이 시간 다시 주님 앞에 회개와 함께 새롭게 결단하는 시간이 되길 소망합니다.

 

그렇다면 오늘 본문 말씀에서 우리가 우리의 삶을 통해 어떻게 하나님을, 또한 하나님 나라를 나타내 보일 수 있는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첫째, 우리는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 넘쳐야 합니다.

오늘 본문 17절은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라고 말씀합니다. 당시 로마교회는 아직까지 율법에 얽매인 유대인 그리스도인과 이방인 그리스도인 사이에 음식 문제로 갈등이 있었습니다. 서로 용서하거나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정죄하기에 바빴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사도 바울은 율법에 따라 음식을 구별하여 먹는 것과 형제의 실족을 상관하지 않고 자유롭게 음식을 먹는 것, 모두 옳지 않음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하나님 나라는 본질과 상관없는 외적인 요인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성령 안에서 나타나는 의와 평강과 희락 안에 있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실상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앞에 의로운 존재가 되었습니다. 우리가 정말로 율법의 잣대로 의롭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이 놀라운 사랑으로 우리를 의롭게 여겨주셨습니다. 또한 십자가의 보혈로 하나님과 막혔던 담이 허물어져 참된 평강, 샬롬의 은혜를 받았으며 세상이 줄 수 없는 구원의 기쁨을 누리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가정에서, 일터에서, 모든 관계 가운데 하나님께서 값없이 주신 이 놀라운 은혜를 기억하며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을 누려야 합니다. 만약 우리가 이 풍성함과 아름다움이 넘쳐나는 삶을 살고 있지 않다면 이제 간절히 구하고 사모하여 성령 안에서 먼저 행하기를 결단해야 할 것입니다.

 

둘째, 우리는 화평의 일과 덕을 세우는 일에 더욱 힘써야 합니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로마 교회 성도들이 자신의 신념에 대한 지나친 집착으로 다른 성도들의 신앙을 판단하거나 업신여기는 일이 발생하여 교회 안에 분란이 조성되었습니다. 몸 안의 지체들이 서로 다투고 싸운다면 그 몸은 정상적으로 움직이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사도바울은 19절에서 “그러므로 우리가 화평의 일과 서로 덕을 세우는 일을 힘쓰나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화평의 일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말씀 안에서 ‘화합하는 일’, ‘하나가 되는 일’을 의미

합니다. 나와 함께 하고 있는 지체의 다른 모습을 보며 ‘틀린 것’이라 정죄하는 것이 아니라 말씀을 좇아서 다름을 인정하고 이해하는 것. 함께 마음을 합하여 하나님 나라를 위해 함께 애쓰는 것이 바로 성령 안에서 하나가 되는 일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되는 일에 힘써야 합니다.

 

또한 덕을 세우는 일에 힘써야 합니다. 이 말의 문자적 의미는 ‘건물을 짓는 것’을 뜻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가정 공동체, 교회 공동체라는 건물을 형성하고 있는 건축물과 같습니다. 가정과 교회를 더 튼튼하고 강하게 하기 위하여 사랑 안에서 서로 세워주도록 힘써야 합니다. 서로 사랑하고 배려하며 가족과 영가족을 나보다 더 낫게 여길 때, 그 공동체는 더욱 굳건해질 뿐 아니라 그 공동체를 통하여 하나님 나라가 더욱 뚜렷이 드러날 것입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사랑하는 가족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하나님의 귀한 것들을 드러내는 자녀요, 세상을 향한 그분의 거울로 삼으셨습니다. 아직 남아있는 2023년 석 달여의 시간들 가운데 우리가 속해 있는 가정, 일터, 학교, 수많은 공동체에서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 화평의 일과 덕을 세우는 일이 풍성함으로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이 현저히 나타내길 소망합니다. 그러할 때,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고 하나님 나라가 확장되며 주님을 알지 못하는 뭇 영혼들이 천국을 경험하게 될 줄 믿습니다.

 

우리 가족 식구들을 통해 만나는 모든 사람들이 기쁨과 행복, 더 나아가 하나님이 주시는 놀라운 사랑을 경험하게 되길 다시금 축복합니다.

 

 

 

↓ 설교문 원고가 필요하신 분은 아래 버튼을 눌러 다운로드 해주세요 ↓ 

추석 설교문-6.hwp
0.06MB
 
 
 
 

추석 가정예배 설교, 주보, 순서지(2017~2022년) 모음 - 5년치 자료

추석 설교문, 가정예배 순서지를 올려드립니다. 다운로드를 원하시는 분께서는 페이지 하단의 다운로드 버튼을 눌러 받아주세요. 추석 가정예배 설교 모음(2017~2022년) 2017년부터 올해까지 했던

selfcar.tistory.com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