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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강림주일 설교, "성령의 열매를 맺는 인생" (갈 5:16-24)

일하는 목회자 발행일 : 2023-05-27

성령강림주일 설교, "성령의 열매를 맺는 인생"

오늘은 성령강림주일입니다. 성령강림주일은 주님의 승천 이후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있던 제자들에게 오순절날 성령이 충만하게 임했던 사건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그래서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신약시대의 교회가 세워지게 되었던 것을 기념하는 절기인 것입니다.

 

물론 그렇다고 성령께서 오순절날에만 이땅에 오셨다는 것은 아닙니다. 구약시대에는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특별한 몇사람에게 성령께서 역사하셔서 그들의 주도적인 역사를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나가셨습니다. 오순절날에는 하나님의 거룩한 역사를 사모하며 기다리는 모든이 들에게 성령께서 임하셔서 생명을 주시고 지혜와 능력을 주시어서 신약교회가 시작되었고, 그 신약교회를 통하여 하나님의 복음의 역사가 오늘까지 이루어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성령강림절의 의미를 되새겨 보면서 저는 오늘 말씀을 통해서 왜 성령을 받아야하는지, 어떻게 하면 성령의 능력을 덧입고 어떻게하면 구원의 은총을 온전히 누리는 가운데서 그 역사를 이루어갈 수 있을지를 되새겨보고자 합니다. 이 말씀을 나눌때에 성령의 은총이 저와 여러분과 함께 하셔서 하나님의 은혜가 충만한 이 한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1. 성령을 받아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성령강림주일을 맞이해서 우리가 제일 먼저 생각할 것은 가장 근본적으로 성령을 받아야한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가장 중요한 명제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는 그야말로 절대절명의 과제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가장 중요한 명제는 성령을 받고 성령의 능력을 덧입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성령을 받아야만 하나님을 알 수 있고, 성령의 은총에 의해서만 주님을 믿을 수 있고, 성령의 은총을 덧입을 때에만 성령의 능력으로 믿음으로 세상을 이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령의 능력을 받을때 구원의 은총을 누리면서 그 능력으로 주님의 거룩한 역사에 동참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그 어떤 지혜자나 능력자라해도 생명의 은총을 누릴 수 없고, 생명의 역사를 이루어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세계는 너무나 신비하고, 너무나 광대합니다. 하나님의 능력, 지혜, 권세, 사랑, 거룩하심은 말그대로 무한히 크고 깊고 넓어 인간은 도저히 측량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세계는 이 세상과는 전적으로 다른 차원의 세계입니다. 반면에 인간은 너무나 미약하고 너무나 생각이나 지식이나 경험이 짧습니다. 더구나 인간은 죄로 말미앞아 그 심령이 어두워져 있습니다. 그래서 인간 자신의 지혜와 능력과 경험으로는 도무지 하나님을 알 수가 없습니다. 영원한 영광의 나라를 깨달아 알 수가 없고, 믿고 따를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정녕 생명의 은총을 누리며 그 생명의 역사를 이루어가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성령을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을 우리의 심령에 모셔들여야 합니다. 그래야만이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하나님을 알게 됩니다. 영적인 세계에 눈이 떠집니다. 영원한 영광의 나라를 보게 됩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믿고 따르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야만이 우리는 영생을 얻게 되고 참된 생명의 기쁨을 누리며, 성령의 능력으로 주님의 거룩한 생명의 역사에 참여할 수 있는 특권도 갖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고전2:13,14절에서는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사람의 지혜의 가르친 말로 아니하고 오직 성령의 가르치신 것으로 하니 신령한 일은 신령한 것으로 분별하느니라.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을 받지 아니하나니 저희에게는 미련하게 보임이요 또 깨닫지도 못하나니 이런 일은 영적으로라야 분변함이니라.” 한마디로 신령한 일은 신령한 영이신 성령의 조명하에서만 깨달을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으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승천하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아버지의 약속하신 성령을 기다리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 명령을 따라 제자들이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 전혀 기도에 힘쓰게 되었을때에 그들은 성령을 받아 생명을 얻고 주님의 거룩한 역사를 힘있게 이루어갔던 것입니다.

 

성령강림주일을 맞이해서 그 무엇보다도 우선해서 여러분의 심령속에 성령님을 온전히 모셔들이기 바랍니다. 아직 성령의 역사하심을 맛보지 못했다면 간절한 마음으로 그분께 탄원하시기 바랍니다. 간구하시기 바랍니다. 기도와 말씀묵상에 더욱 힘쓰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마가의 다락방에 임했던 성령의 능력이 여러분과 함께 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성령의 능력으로 진정한 구원의 은총을 누리고, 더욱 큰 기쁨과 감격과 은혜가운데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2.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야 합니다.

성령을 받았으면 이제는 그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따라야 합니다. 그래야 그 능력이 온전히 우리가운데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성령을 받은 것과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는 것은 좀 다른 문제입니다. 성령을 받는다는 것은 근본적인 문제이며, 내면적인 문제입니다. 그러나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는다는 것은 외면적인 것이고 행위적인 문제입니다. 그래서 이 두가지는 서로 완전히 일치되지 못할 때가 많은 것입니다.

 

물론 내면과 외면은 같이 가야 정상이지만 그러나 죄와 무지와 어둠속에 있는 우리 인생은 그렇지 못할가 많습니다. 여러분, 윤리적으로나 도덕적으로도 그렇지 않습니까? 양심에서는 안된다 안된다하면서도 때로는 행동이 그 안되는 일을 좇아갈 때가 있습니다. 마음으로는 이렇게 해야지 저렇게 해야지 하면서도 행동에서는 그렇게 하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영적으로도 그렇습니다. 성령을 받아 하나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예수님도 믿게 되었습니다. 여러분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는 것은 성령을 받았다는 증거입니다. 성령의 받아 주의 성령이 여러분안에 내주하심으로 예수님을 믿게 되었고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을 따라 살고 싶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진리의 말씀을 좇아 살고 싶습니다. 말씀대로 살아보자고 하면서 다집도 해봅니다. 그러나 그게 어디 마음대로 됩니까? 세상욕심 다버리고 나 자신을 십자가에 못박아 버리고 주님의 십자가의 원리를 따라 살라야지 하지만 우리의 육신은 자꾸만 세상의 것을 좇아 가려고 합니다. 이것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고민이 아닙니까?

 

그렇습니다. 비록 우리가 성령을 받았다해도 아직도 우리에게는 연약하고 미련하고 어리석은 것들이 남아 있습니다. 죄로 인하여 하나님의 형상이 심각하게 손상되어 있는 부분이 남아 있습니다. 마음은 어두워졌고, 지혜는 제한되어 있고, 육신도 의지력도 연약해 졌습니다. 게다가 우리는 세상에서 살면서 세상에서 배우고 보고 듣고 경험하는 과정을 통하여 여러 가지 세상적인 지식과 이성과 가치관들이 굳어져있습니다. 그래서 진리의 길, 생명의 길을 잘 가지 못하게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그리스도인의 삶속에 믿음과 삶의 괴리현상이 발생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찌해야 됩니까? 물론 우리는 이 숙제를 풀기 위하여 애써야 합니다. 기도해야 합니다. 노력해야 합니다. 비록 완성시키지는 못하겠지만, 하늘 나라에 가서야 완성되겠지만 어쨌든 주님앞에 서는 그 순간까지 고민하며 이 문제를 놓고 씨름해야 합니다.

 

다른 왕도는 없습니다. 끊임없이 하나님앞에 엎드리는 수밖에 없습니다. 끊임없이 하나님앞에 엎드려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며 성령께서 나를 완전히 지배할 수 있도록 간구해야 합니다. 나 자신을 쳐서 복종시키면서 나의 삶을 성령께서 이끌어가시도록 우리 자신을 성령님께 맡기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조용히 기도하며 그분의 인도하심에 전적으로 따르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주님께 맡겨야 합니다. 그리하면 우리는 조금씩 조금씩 더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르는 삶을 향하여 나아가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께서는 아직 성령을 받지 못한 분이라면 정말 하나님앞에 간절히 엎드려 기도하며 말씀을 묵상할때에 성령의 능력을 덧입으시고, 이미 성령을 받을 분들께서는 더욱 성령께서 자신을 완전히 지배하고 이끌어 가시도록 기도하며 힘써 나갈때에 더욱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생명의 은총을 누리고 생명의 역사를 이루어 가시는 귀한 주님의 사람들이 다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3. 나 자신을 끊임없이 십자가에 못 박아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으려면 하나님앞에 간절히 엎드려 우리 자신을 십자가에 못박는 작업을 계속해 나가야 합니다. 오늘 24절 말씀을 보십시오.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무슨 뜻이겠습니까? 물론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 믿고 예수님의 삶을 따라 생명의 길로 가는 사람들인데 이들에게 있어서 가장 특징적인 것이 무엇이냐하면 우리의 육신의 생각에 속한 것들을 십자가에 못박은 사람들이다 그런 이야기입니다. 우리 자신의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들을 십자가에 못박아 장사지내고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새로운 생명과 새로운 가치와 새로운 소망을 덧입은 사람들이다 그런 이야기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그렇게 옛것을 자꾸 십자가에 못박아야한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이겠습니까? 그 이유는 오늘 17절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리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리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의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여기에 아주 명백하게 우리의 육신에 속한 것들을 십자가에 못박아야 할 이유를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까? 간단히 말씀드려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리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육적인 생활은 자꾸만 진리의 길, 생명의 길, 은혜의 길보다는 세상길로 나아가서 물질에 얽매이고, 문화에 얽매이고, 욕심에 얽매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결국 하나님 뜻대로 살기보다는 세상 뜻대로 곧 마귀의 뜻대로 살기가 쉽기 때문에 성경에서는 계속해서 우리의 육신의 정욕에 속한 것들을 십자가에 못박아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오늘 본문의 말씀에서는 육체에 속한 것과 성령에 속한 것이 얼마나 극명하게 다른지 이 두가지를 선명하게 대비시켜 말씀하고 있습니다.

 

먼저 육체에 속한 것은 어떤 것이라고 하였습니까? 그것은 오늘 19-21절의 말씀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육체의 일은 현저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술수와 원수를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짓는 것과 분리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육체의 일은 현저하니......... 육체의 일은 너무나 분명하다는 것입니다.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술수와 원수를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짓는 것과 분리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이러한 것들이 육체를 따라 살아가는 사람들의 분명한 현상이다 그런 이야기입니다.

 

그저 육체의 요구를 따라 사는 사람들의 모습속에서 이 중에 한가지라도 걸리지 않는 사람들이 있는가 보십시오. 물론 한가지라도 안 걸리는 사람들이 없습니다. 겉으로는 아닌 것같아도 그저 육신의 요구를 따라 사는 사람들은 이러한 것들의 지배를 받고 있습니다. 아무리 고상한 것 같아도, 아무리 학식과 명예와 권세가 있는 것 같아도 그래서 겉으로 드러난 것은 아주 대단한 것 같아도 그래도 별거 아닙니다. 다 이런 모습들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사실은 아직도 우리들 속에도 이러한 요소들이 남아 있는 것입니다. 죄된 본성을 가지고 있는 우리들에게도 이러한 못된 본성들이 남아 있어서 자꾸만 고개를 들고 세상 밖으로 나아오려고 하니까 우리는 어쩔 수없이 자꾸만 자꾸만 우리 자신을 십자가에 못박으면서 자신을 쳐서 복종시켜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그러한 죄된 본성들이 고개를 들고 밖으로 나오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끊임없이 기도하고 훈련하면 결국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게되면 결국 그러한 세상적이고 마귀적인 것들은 자꾸만 쇠약해져가고, 성령께서 주시는 품성들은 날로날로 강해져 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결국은 성령의 열매들이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 성령의 열매를 오늘 본문에서는 무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그것은 오늘 22,23절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얼마나 아름다운 것들입니까? 얼마나 가치있는 것들입니까?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이러한 것들이 우리 모든 인생들의 삶속에 나타나기만 한다면 어찌 세상이 아름답지 않겠습니까? 어찌 우리들의 삶이 빛과 빛는 삶이 되지 않겠습니까? 어찌 세상의 고통과 아픔과 절망적인 상황들이 우리를 삼킬수가 있겠습니까?

 

 

결론

오늘 성령강림주일을 맞이하여 정말 우리는 이런 모습을 가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기 위하여 정말 성령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아니 다 받으신줄 압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는 것은 성령을 받았다는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이제부터는 정녕 성령의 인도하심을 온전히 따를 수 있도록 끊임없이 기도하며 무릎 꿇으며 훈련하시기 바랍니다.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리며, 성령의 소욕은 육체의 소욕을 거스린다는 것을 기억하며 끊임없이 세상에 속한 것들을 십자가에 못박는 삶을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우리 온 성도여러분께서는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온전히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아가실때에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의 열매를 풍성하게 맺어서 여러분 자신도 구원의 은총을 온전히 충만하게 누리시고 여러분으로 인하여 이땅위에 정오의 빛과 같이 빛나는 세상이 펼쳐지게 될 수 있게 되기를 간절히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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